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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간론파 (어나더)

제발

범인은바로너! 2016. 4. 27. 00:01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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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그는 으슥한 방 안에서 눈을 떴다. 처음에는 시뿌옇던 머릿속이 점차 맑아지며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. 몇 번 둘러보진 않은 곳이지만 이 곳은 창고다. 높게 쌓아올려진 상자들 사이로 달빛 내려앉는 창문이 보인다. 저 곳으로 탈출할 수 있을 것 같다. 하지만 이내 그걸 포기해버린다. 그는 건물 기둥에 손과 발이 묶여있는 상태다.
 거기까지 판단을 마친 후 다시 고개를 꺾는다. 어디라도 맞은 듯 온 몸이 제 뜻대로 움직이질 않는다. 눈을 뜨고있는 것만 해도 고역이다. 주륵 흐르는 침을 삼킬 생각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앉아있다.

 그의 17년 인생 중 그만큼 기묘했던 경험은 없었다. 지금 그가 처한 상황―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납치되어 살인을 강요당하는 것―을 고려해보자면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. 그 생각을 언제나 잃지 않고 있었다. 다만 한 구석에선 다르게 여기고 있었다.

 '살인같은게 일어날 리가 없어.'

 조금 더 나아가면

 '내가 여기서 죽을 리가 없어.'

 오만이었다. 결국 그도 한낱 인간에 불과한 것을 무엇을 믿고 그리 생각했었을까. 겨우 안면만 튼 사이를 너무 믿은 것이 문제였다고, 시원한 머리 한 구석으로 냉정하게 판단한다.
 등가교환의 법칙따위 엿이나 주라지. 친절을 줘도 돌아오는건 불공평한 폭력― 그 이상은 생각하지 못한다. 산소가 부족하다. 목에 파고드는 밧줄이 그의 온몸을 시퍼렇게 바꾸고 있다.

 '죽는다면 적어도 고통 없이 죽고 싶었는데.'

 아니다.
 죽고싶지 않다.

 살고싶다.
 살고싶어.

 흐릿한 눈 앞에 하얀 칼날이 어른거린다. 거품낀 입가가 올라간다.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왜 웃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. 왜 즐거운 것인가 알지 못한다.

 그는 무언가를 말한다. 입 밖으로 낸 소리는 짐승의 발악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말한다. 그의 배를 난도질하는 범인은 그것을 그저 비명소리라 착각한다.

 죽음에 대한 '절망'이 이리도 달콤할줄이야. 마에다 유우키는 마지막으로 웃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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